[전봇대의 재발견] 무심코 스치는 회색 기둥, 전봇대가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 전쟁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도시의 혈관 역할을 하는 전봇대의 과학 원리와 미래, 지중화 사업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탐사합니다.

얼마 전, 해 질 녘의 골목 풍경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확인하는데, 붉게 물든 하늘을 가로지르는 검고 복잡한 전선과 그 중심에 우뚝 솟은 전봇대의 실루엣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의도치 않게 사진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그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본 적 없었던 도시의 풍경. 우리는 왜 이 거대한 기둥을 애써 외면해 왔을까. 그 무심함의 이면에는, 현대 문명을 가능하게 한 거대한 역사가 숨어 있었습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쟁터에서 태어나다
놀랍게도 전봇대의 시작은 ‘전기’가 아닌 ‘통신’이었습니다. 1844년 새뮤얼 모스가 전신(Telegraph)을 발명하면서, 멀리까지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전선을 연결할 기둥이 필요했죠. 이것이 바로 ‘전신주’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아는 ‘전력용’ 전봇대가 세상을 뒤덮게 된 계기는 19세기 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벌전으로 꼽히는 ‘전류 전쟁(War of Currents)’ 때문이었습니다.

- 토머스 에디슨 (직류, DC): ‘발명의 왕’ 에디슨은 안전한 직류 시스템을 밀었습니다. 하지만 직류는 멀리까지 전기를 보내기 어려워 발전소를 도시 곳곳에 빽빽하게 지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죠.
- 니콜라 테슬라 (교류, AC): 반면 테슬라가 고안한 교류 시스템은 변압기를 이용해 전압을 자유자재로 바꿔 아주 먼 거리까지 효율적으로 전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경제성과 효율성에서 앞선 테슬라의 교류가 승리했고, 이 덕분에 거대한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전봇대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전봇대는 바로 이 위대한 전쟁의 ‘승전 기념비’인 셈이죠!
결국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이 승리하면서, 그 결과물이 제가 찍은 사진 속 하늘을 가로지르는 저 전선이 되었습니다. 무심코 바라본 풍경 속에, 이토록 치열했던 세기의 대결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옵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는 어디서?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 점등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에디슨 전기회사가 발전기를 설치했는데, 증기기관 소리가 너무 커서 임금의 침소와 먼 연못가에 설치했다고 해요. 그때의 전기는 직류 방식으로, 전봇대를 통한 현대적 전력 공급과는 거리가 있었답니다.
우리 집까지 전기가 오는 여정: 전봇대 해부학
복잡하게 얽힌 전봇대를 자세히 보면, 우리 집까지 안전하게 전기를 보내기 위한 첨단 과학 장치들이 숨어있습니다.

- 주상 변압기 (Pole-mounted Transformer): 전봇대 중상단에 달린 ‘회색 쓰레기통’처럼 생긴 장치, 다들 보셨죠? 이게 바로 변압기입니다. 발전소에서 온 수만 볼트(V)의 초고압 전기를 가정에서 쓰는 220V로 낮춰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애자 (Insulators): 전선이 전봇대에 바로 닿으면 전기가 기둥을 타고 땅으로 흘러버리겠죠? 이를 막기 위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세라믹(사기) 재질의 ‘애자’를 사용해 전선을 고정합니다. 빗물이 흘러도 전기가 통하지 않도록 주름진 접시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요.
- 전선 (Wires): 전봇대 꼭대기의 가장 두꺼운 선이 22,900V의 고압 전선이고, 변압기를 거쳐 나온 아래쪽 선들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저압 전선입니다. 그보다 더 아래에 복잡하게 얽힌 선들은 대부분 인터넷이나 케이블 TV 선 같은 통신선이에요.
📌 왜 한국 전봇대는 유독 복잡해 보일까?
과거 급격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도시 계획보다 전기/통신망 설치가 더 빠르게 진행되었고, 여러 통신사가 경쟁적으로 케이블을 설치하면서 지금처럼 복잡한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정리하기 위한 사업이 계속 진행 중이랍니다.
도시의 혈관, 땅속으로 사라질까? 전봇대의 미래
전봇대는 현대 사회의 필수 인프라지만,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태풍이나 교통사고 시 안전을 위협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전선 지중화(Undergrounding)’ 사업입니다.

전봇대와 전선을 모두 땅속에 묻어 깔끔하고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 구분 | 장점 (👍) | 단점 (👎) |
|---|---|---|
| 전선 지중화 | – 깔끔한 도시 미관 확보 – 태풍, 감전 등 자연재해 및 사고 위험 감소 – 전선 추가/제거 등 관리 용이 | – 막대한 초기 설치 비용 (지상 설치의 약 10배) – 고장 시 문제 지점 파악 및 복구 시간 소요 – 지진 발생 시 더 큰 피해 우려 |
이처럼 막대한 비용과 유지보수의 어려움 때문에, 2025년 현재 우리나라는 신도시나 도심 번화가를 중심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는 추세입니다. 언젠가 우리 동네의 전봇대도 모두 사라지는 날이 오겠죠?
전봇대 요약
탄생 : 테슬라(AC)와 에디슨(DC)의 ‘전류 전쟁’의 산물
과학 : 전압을 낮추는 ‘변압기’와 전류를 막는 ‘애자’
미래 : 도시 미관과 안전을 위한 ‘전선 지중화’로의 전환
FAQ: 전봇대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들
Q. 왜 참새는 전깃줄에 앉아도 감전되지 않나요?
👉 새의 몸은 전선보다 저항이 훨씬 커서 전기가 굳이 새로 흐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는 한 줄의 전선에만 앉아있어 전위차가 발생하지 않죠. 만약 새가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건드리거나, 전봇대와 전선을 함께 건드린다면 바로 감전될 수 있습니다.
Q. 전봇대에 붙어있는 회색 통(변압기)에서 ‘웅~’하는 소리가 나는데 괜찮은 건가요?
👉 네, 정상적인 소리입니다. 변압기 내부의 철심이 교류 전류의 주파수(60Hz)에 맞춰 미세하게 진동하면서 나는 소리(자기 변형 소음)입니다. 하지만 소리가 평소보다 유난히 크거나 이상하게 들린다면 한전(국번없이 123)에 연락해 점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Q. 전봇대는 왜 대부분 콘크리트로 만드나요?
👉 초기에는 목재를 많이 썼지만, 썩기 쉽고 내구성이 약해 지금은 수명이 길고 튼튼하며 비용 효율적인 콘크리트 전봇대(CPC 전주)를 주로 사용합니다. 아주 높은 전압이 흐르는 송전탑은 더 튼튼한 강철로 만듭니다.
Q. 전봇대가 넘어지거나 전선이 끊어진 것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절대 가까이 가거나 만지면 안 됩니다! 끊어진 전선에도 여전히 고압 전류가 흐를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후 한국전력(국번없이 123)에 신고해야 합니다.
Q. 모든 전봇대를 땅에 묻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인가요?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비용이 엄청나고, 홍수나 지진 발생 시 복구가 더 어렵다는 단점도 있죠. 각 도시의 환경과 재정 상황에 맞춰 지상 방식과 지중 방식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마무리

이제 저는 해 질 녘의 풍경을 담았던 그 사진을 다시 봅니다. 이전에는 그저 풍경을 망치는 방해물로 보였던 전봇대의 실루엣이, 이제는 에디슨과 테슬라의 논쟁과, 도시의 동맥을 이루는 과학, 그리고 미래를 향한 고민까지 품고 있는 하나의 기념비처럼 느껴집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 삶의 배경을 묵묵히 지탱해온 그 존재의 의미를, 저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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